박해량(1850~1886)의 본관은 순천, 자는 도겸(道謙), 호는 율수(聿修)이다. 광산구 하남동(장수리)이 거주지이다. 박해량의 호는 율수재聿修齋로 고산 임헌회, 중암 김평묵, 면암 최익현, 노사 기정진 등에게서 학문을 터득했으나 36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업적을 많이 남아 있지 않으나 탐라耽羅, 흑산黑山 등지에 유배
광주광역시 광산구 도덕동(광산구 도림하길 33) 마을 안에 있는 도림사는 1934년 노사 기정진, 난와 오계수, 후석 오준선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유림들이 세운 사우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단 위의 기둥이나 단청 등은 고풍스럽게 느껴지지만 기단은 콘크리트로 쌓아 축조된 1
나도규羅燾圭(1826~1885)의 본관은 나주이다. 자는 경문(敬文)이고 호는 덕암(德巖)이다. 당시 계촌면에 살았는데 오늘날 남구 석정동에 해당한다.부 : 羅禧集조 : 羅錫曾증조 : 羅弼殷처부1 : 李鉉臨노사 기정진에게 수학하였고 1880년 노사선생 襄禮 때 참석하였다.1880년 3월 25일에 奇陽衍에게 편지를 보냈다. 1883년 1
기동준(1869~1918)의 본관은 행주이며 자는 평중(平仲), 호는 춘담(春潭)으로 진사를 지냈다.부 : 奇昌鉉조 : 奇文國증조 : 奇象德외조 : 海州 崔煥潤처부1 : 長興 高濟斗1860년 11월 17일 奇大升의 후손인 昌鉉의 아들로 光州 廣谷里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용모가 단정하고 총명하였으나 잦은 질병에 시달렸다. 평소 어
기경섭(奇景燮, 1852~1916)의 본관은 행주이며 행주기씨(幸州奇氏)이다. 자는 백행(伯行), 호는 벽서(碧捿)이다.부 : 奇東燁 조 : 奇夏麟 증조 : 奇師達 외조 : 昌寧 曺亨振 처부1 : 長興 高濟運노사 기정진에게 수학하였고 1914년 6월 20일에 奇宇萬에게 편지를 보냈다
고광선(高光善, 1855~1934)의 본관은 장흥(탐라)이며 장흥고씨(長興高氏)이다. 자는 원여(元汝) 호는 현와(弦窩)이다. 서창면 용두리에 살았다. 1855년(哲宗 6) 光州 復村에서 湖隱 高璞柱와 행주기씨 禹鎭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조선조 기묘명현의 한 사람인 霞川 高雲과 忠烈公 高敬命의 직계후손이다. 어려서부
"호남의 정신은 실사구시의 사림정신과 향약으로 다져진 올바른 가치관에서 비롯되었습니다.”이종범 한국학호남진흥원장은 13일 조선대 지역인문학센터 주최, 광주 서구문화원 주관으로 서구문화원 강의실에서 가진 ‘도로에 새겨진 호남 사림의 정신: 필문 이선제와 눌재 박상’을 주제로 한 특강에서 이렇게 밝혔다.이 원장
광주시 광산구 본동로 158오준선吳駿善(1851~1931)의 본관은 나주(羅州), 자(字)는 덕행(德行), 호(號)는 후석(後石)이다. 현재의 광산구 삼도동 도림에서 출생하였다. 기정진의 대표적인 문인으로, 방대한 분량의 저술인 <후석유고>를 남긴 한말 유학자이다. 특히, 그는 1910년 망국 직후 일제가 지급한 이른바